경북 영양군의 한 시골 마을. 작은 도로 옆에 서 있는 6평 남짓한 구멍가게가 있다. 편의점 체인도 아니고, 마트도 아니다. 이 가게를 40년 넘게 지켜온 사람은 올해 74세인 박순남 어르신이다. 수없이 많은 가게가 사라져 간 이 골목에서, 그의 가게는 아직도 매일 문을 연다. 사람들은 궁금해한다. “아직도 장사를 하세요?”
1. 1980년대, 생계를 위한 시작
박 어르신은 1983년, 마을에 작은 가게 하나를 열었다. 남편은 타지로 돈을 벌러 나갔고, 아이 둘을 키우는 일은 전적으로 그녀의 몫이었다. 그 시절, 동네에 상점은 하나뿐이었다. 쌀, 라면, 연필, 과자 등 없는 물건이 없었다. “없는 건 하늘, 있는 건 다 있었지.” 그녀는 웃으며 말한다.
당시는 매일 사람들이 북적였고, 아이들이 용돈을 들고 달려왔다. 가게는 동네의 중심이자 정보의 거점이었다. 소문도, 안부도, 생필품도 이 작은 공간에서 오갔다.
2. 마을이 늙어가면서 가게도 늙었다
1990년대 말부터 변화가 시작됐다. 청년들이 하나둘 떠나고, 학교는 통폐합됐다. 도시에 새로 생긴 마트는 물건도 많고 더 쌌다. 구멍가게의 매출은 매년 줄었다. 그러나 박 어르신은 가게 문을 닫지 않았다.
“문을 닫으면 내가 할 일이 없어.” 그녀에게 가게는 단지 물건을 파는 공간이 아니었다. 삶의 루틴이었고, 외로움을 덜어주는 작은 사교장이었다.
3. 돈보다 중요한 일
요즘 하루 매출은 3만 원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매일 아침 7시 반이면 셔터를 올린다. 단골은 이웃 할머니, 마을회관에서 일하는 주민들, 그리고 간혹 들르는 손자들이다.
“젊은 사람들은 이해 못 해. 돈 벌자고 여는 게 아니라니까.” 그녀는 구멍가게를 통해 하루하루를 지탱하고 있다. 손님이 없어도 불을 켜고 문을 여는 이유는 존재를 증명하고 싶어서다.
4. 진열대 위에 놓인 기억들
가게 선반엔 유통기한이 다 된 과자도 있다. 하지만 그것조차 누군가의 추억이 된다. “이 과자 아직 팔아요?” 30대가 된 청년들이 그렇게 물을 때, 박 어르신은 미소를 짓는다.
몇몇 손님은 사지도 않고 10분씩 얘기만 나눈다. 그녀는 귀찮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누군가와 말할 수 있다는 게 고맙다.
5. 구멍가게가 지켜낸 동네의 기억
이 마을엔 이미 학교도 폐교됐고, 병원도 없다. 버스는 하루에 두 번밖에 오지 않는다. 그런 마을에서 구멍가게는 하나의 ‘생활 기반’이다.
박 어르신은 이웃 어르신들에게 약봉지 대신 요구르트를 챙겨주고, 초등학생에게 생필품을 외상으로 줬다가 부모에게 갚게 한다. 그런 식으로 사람 사이의 신뢰가 유지되어 왔다.
6. 자식들의 걱정, 어르신의 고집
“엄마, 그만하셔도 돼요.” 자식들은 수차례 문을 닫으라고 권했다. 하지만 박 어르신은 한결같다. “내가 문 닫으면, 이 골목도 조용해져.” 가게는 그녀의 생애, 그녀의 자존심이 되었다.
주변 이웃들도 말린다. “어르신 가게 없으면 우리 어디서 물건 사요?” 대형마트가 차로 30분 거리에 있지만, 노인은 차가 없고, 스마트폰도 없다.
7. 디지털 시대, 구멍가게의 대응
요즘은 카드 단말기도 도입했다. 처음엔 어려워했지만, 손님이 편하다며 자식에게 배웠다. 온라인 주문도 모르고, 배달도 하지 않지만, 가게 문을 열고 나오는 어르신의 얼굴 하나로 사람들은 다시 돌아온다.
“나는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사람을 맞이하는 거야.” 그녀의 말은 소상공인의 본질을 보여준다.
8. 구멍가게의 지속 가능성
수익은 거의 없다. 그러나 삶의 동력이 된다.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손님이 있어, 박 어르신은 내일도 문을 열 준비를 한다.
정육점, 문구점, 옷가게처럼 줄줄이 문을 닫았던 이 골목에서 유일하게 불을 밝히는 곳은 구멍가게뿐이다. 그 존재 하나로도 골목은 외롭지 않다.
9. 마을 아이들의 첫 가게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500원짜리를 손에 꼭 쥐고 찾아온다. 사탕 하나, 과자 하나를 고르며 신중하게 소비를 배운다. 그 순간을 박 어르신은 흐뭇하게 바라본다.
“얘가 처음으로 돈 써본 데가 여기래요.” 부모가 말할 때, 박 어르신은 가게를 열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10. 사라질 것 같지만, 남겨지는 것들
이 구멍가게는 언젠가 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공간이 남긴 기억과 관계는 오래도록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는다.
박 어르신은 말한다. “나는 매출보다 마음이 남는 장사를 해왔어.” 그 철학이 이 가게의 진짜 수익인지도 모른다.
11. 어르신의 내일
박 어르신은 특별한 계획이 없다. 가게를 하루하루 열고, 오는 사람을 반갑게 맞이하며, 언젠가 문을 닫게 되는 날까지 그저 지금처럼 지낼 생각이다.
“나중엔 손자들이 내 얘기를 기억하겠지.” 그녀는 소박하지만 깊은 미소를 지으며 가게에 앉아 있다. 지나가는 마을 사람들이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고, 그녀는 익숙한 손짓으로 화답한다.
70대 어르신이 운영하는 구멍가게는 단순한 상점이 아니다. 그곳은 마을의 안부가 오가는 곳이자, 일상과 사람의 온기가 있는 공간이다. 그녀는 삶을 팔고, 시간을 기억하게 만든다.
결론
구멍가게는 매출보다 ‘관계’를 남긴 공간이다. 박 어르신이 문을 여는 이유는 단순히 장사가 아니라, 자신이 속한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실감 때문이다. 그래서 이 가게는 여전히 문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