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 탄현 카페거리는 한때 ‘SNS 맛집 성지’로 불리던 곳이다. 깔끔한 외관, 감성 인테리어, 인증숏을 부르는 디저트들이 줄지어 들어서며 한동안은 전국 각지에서 젊은 고객들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의 물결도 함께 찾아왔다.
치열한 경쟁, 빠른 트렌드 변화, 코로나 이후의 상권 침체까지.
그 안에서 조용히 6년째 가게를 지켜온 디저트숍이 있다. 이름은 ‘카페 그레인(grain)’. 단 1평 남짓한 테이크아웃 전문 디저트 가게다. 이 작은 가게가 어떻게 탄현에서 살아남았는지, 그 이야기를 창업자 김다희 사장의 시선을 통해 따라가 보자.
처음부터 ‘크게’ 하지 않았다
김다희 사장은 원래 요리학원 강사였다. 케이크 데코 수업을 하던 중, 학생들의 피드백을 통해 직접 디저트 가게를 해보자는 생각을 품었다. “레시피만 알려주는 게 아니라, 직접 판매까지 해보고 싶었어요.” 그녀는 처음부터 “작게, 천천히, 단단하게” 시작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1평 남짓한 공간을 임대했다. 주방과 쇼케이스만 있는 테이크아웃 전용 디저트숍. 커피는 팔지 않았다. “카페가 아닌 ‘디저트 전문점’이라는 정체성을 지키고 싶었어요.”
매일 아침 직접 만드는 10개 한정 케이크
카페 그레인은 ‘소량 생산’을 원칙으로 한다. 김 사장은 매일 아침 6시에 출근해 티라미수, 당근케이크, 레몬파운드, 무화과 타르트 등 총 10개 안팎의 디저트를 손수 만든다.
“많이 팔기보단, 정성껏 만들고 싶었어요. 그리고 매일 조금씩 바뀌는 메뉴가 손님들에게도 즐거움을 줘요.” 메뉴판도 없고, 당일 만들어진 디저트는 쇼케이스 앞 손글씨 태그로만 소개된다.
이 방식은 예상외로 강한 브랜딩 효과를 만들었다. “오늘 뭐 나왔어요?” 단골손님들은 메뉴를 보지 않아도 들어오자마자 묻는다. 작지만 확실한 정체성이 생긴 셈이다.
입소문, 그 하나만 믿고 가게를 지켰다
초기엔 SNS 홍보 없이 시작했다. 별도 광고 없이, 수업하던 제자 몇 명이 오고 간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한 손님의 인스타그램 게시글이 화제를 모으며 조금씩 팔로워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엔 하루에 3명 오는 날도 있었어요. 그래도 ‘한 명이 또 한 명을 부르면 언젠간 채워질 거야’ 그 믿음 하나로 버텼죠.”
지금은 예약 없이 오면 품절인 날도 많다. 그래서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오후 1~2시 사이에 가장 많이 몰린다. 그녀는 “손님들이 시간을 기억해 주는 것도 하나의 성공이라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다 같이 줄지어 망해가는 거리에서, 나는 살아남았다
탄현 카페거리는 호황과 침체를 반복한 상권이다. 처음엔 SNS 핫플로 떠오르다가 프랜차이즈 입점 → 월세 급등 → 유동인구 급감이라는 전형적인 곡선을 따라가게 되었다.
그 사이 수많은 디저트 가게가 문을 닫았지만, 카페 그레인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비결은 바로 “1인 운영 + 고정비 최소화 + 진심 있는 소량 생산”이었다.
“월세 부담이 적으니 조급하지 않았고,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만들었기 때문에 ‘무너질 이유’도 없었어요.” 그녀는 그렇게 살아남았다.
손님을 ‘고객’이 아닌 ‘관계’로 본다
김다희 사장은 손님과 눈을 맞추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여기 오시는 분들 중엔 ‘오늘 회사에서 힘들었어요’ 하고 털어놓는 분도 계세요. 그냥 케이크를 사는 게 아니라, 감정을 맡기고 가는 느낌이죠.”
그래서 그녀는 주문 시 눈을 마주치고 인사하고, 이름을 기억하고, 생일에는 조용히 손 편지를 건네는 방식으로 단골과의 유대를 유지해 왔다.
“작은 가게의 가장 큰 무기는 ‘기억’이에요. 손님을 기억하면, 손님도 나를 기억해 줘요.” 그녀의 철학이 녹아든 문장이었다.
가장 작게 시작했지만, 가장 크게 남는 가게
카페 그레인은 규모도 작고, 메뉴도 많지 않다. 하지만 이곳엔 진심과 정성이 있다. 화려한 홍보도, SNS 마케팅도 없지만 ‘맛’과 ‘관계’라는 가장 단단한 무기를 가지고 있다.
김다희 사장은 지금도 하루에 딱 20명만 응대한다는 원칙을 지킨다. “하루에 20명에게 제대로 기억되자.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에요.” 그 말엔 군더더기 없는 장사의 미학이 담겨 있었다.
✔️ 블로그 글 요약
- 일산 탄현 카페거리에서 살아남은 1평 디저트 가게 ‘카페 그레인’ 이야기
- 1인 운영, 소량 생산, 광고 없는 브랜딩 전략
- 손님과 관계를 중심에 둔 진심 어린 서비스
- 지속 가능하고 현실적인 생존 전략
- 작지만 깊은 감동을 주는 장사 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