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을지로는 이제 ‘힙한 골목’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그 깊은 골목 사이엔 여전히 오래된 상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중 한 곳, 을지로 3가 공구상가 2층에 위치한 '대도툴'은 40년째 같은 자리에 앉아 손님을 맞이하는 김정수 사장님의 공간이다.
김 사장님은 요즘처럼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바뀌지 않는 게 경쟁력’이라고 말한다. 그 말 한마디엔 오랜 세월 쌓인 자부심과 철학이 녹아 있었다.
“나는 공구를 팔지 않습니다, 해결책을 팝니다”
김 사장님은 단순히 공구를 파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쓰려고 하는지를 먼저 들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드릴을 사러 온 사람이 실제로 벽에 구멍을 뚫고 싶은지, 목재를 가공하려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공구를 추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는 먼저 묻습니다. ‘어디다 쓰시려고요?’ 그걸 듣고 나면, 제일 저렴하고, 제일 오래가는 걸로 추천해요. 고객도 만족하고, 다음에 또 오죠. 그게 40년 장사 비결이에요.”
그의 말처럼, 가게 안에는 다양한 종류의 공구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국산 브랜드부터 외국산 특수공구까지, 어떤 작업이든 맞춤형으로 바로 꺼내줄 수 있을 만큼 손에 익은 배치다.
을지로가 바뀌어도 철학은 남는다
을지로는 최근 몇 년 사이 젊은 예술가들과 감성 카페들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그 중심에는 여전히
70~80년대부터 자리를 지켜온 소상공인들
이 있다. 김 사장님도 그중 한 명이다.
“내 주변 가게들이 많이 바뀌었어요. 옛날엔 전부 공업사였는데, 이제는 카페, 편집숍, 전시 공간이 많아졌죠. 그래도 난 여기 있어요. 여기가 내 자리니까요.”
그는 트렌드를 탓하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사람들이 을지로를 찾으면서 자신도 “새로운 질문”을 받게 됐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최근엔 젊은 예술가가 철판 절단용 공구를 사러 왔다고 한다. 작업 도구가 필요했던 그에게, 김 사장님은 사용법부터 보관법까지 알려줬다.
아날로그 감성, 사람의 손을 기억하는 공간
공구라는 물건은 전자제품과 다르다. 직접 만지고, 직접 힘을 줘서 써야 한다. 그렇기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 사장님은 “이런 가게는 설명을 잘하는 게 반”이라고 말한다. 그는 고객에게 설명을 할 때 직접 손으로 시연을 하거나, 종이에 스케치를 하면서 설명을 곁들인다.
가게 한쪽에는 90년대 공구 카탈로그가 그대로 보관되어 있다. 그는 “가끔은 요즘 없는 공구를 찾으러 오는 사람들도 있어서 이런 자료들이 유용하다”라고 말한다.
매일 반복되는 ‘오프라인’의 힘
그는 매일 아침 8시에 문을 연다. 첫 손님이 오지 않더라도 가게를 닦고, 공구를 정리하고, 지난날 판매한 제품들의 반응을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오후가 되면 단골들이 하나둘 나타난다. 건축 현장 인부, 젊은 창업자, 철공소 사장님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김 사장님을 찾는다.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공구는 팔아요. 하지만 저는 얼굴을 보고 제품을 설명해 줄 수 있어요. 이게 바로 오프라인의 힘이에요. 그래서 여태까지 버텼고, 앞으로도 버틸 겁니다.”
을지로 한복판에서 만난 삶의 무게
김정수 사장님의 손에는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거칠어진 손끝, 기름때가 배인 손바닥은 40년 세월의 증명이다. 그는 공구를 팔지만, 동시에 사람들의 문제를 함께 해결해 주는 일종의 ‘생활 기술자’처럼 느껴진다.
“고객이 ‘이걸로 해결됐어요’ 하고 돌아갈 때, 나는 장사꾼이 아니라, 문제 해결사라는 자부심이 생겨요.”
소상공인, 도시의 뿌리를 지키는 사람들
김 사장님은 특별한 미션이나 브랜드 없이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고객을 만족시키고 있었다. 그의 가게엔 간판보다 더 확실한 신뢰가 있다. 바로 ‘사람을 대하는 태도’다.
이처럼 지역 소상공인들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도시의 문화를 보존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며, 일상 속 불편을 직접 해결해 주는 숨은 주역들이다.
을지로 공구상가의 한 칸 작은 점포에서 우리는 기계보다 더 따뜻한 ‘사람의 기술’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 기술은 전동이 아닌 손에서, 말에서, 그리고 마음에서 비롯된다.
✔️ 블로그 글 요약
- 을지로 공구상에서 40년간 장사한 김 사장님의 철학
- 판매보다 ‘문제 해결’ 중심의 장사 방식
- 세대가 변해도 사람 중심 가게로 살아남는 법
- 오프라인의 힘과 고객과의 신뢰 구축 방식
- 소상공인이 도시 문화를 지키는 방식